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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관] 믿을 수 있는 사람 “유랑하는 이방인” (곽은미 감독 + 이설 주연)

믿을 수 있는 사람

“우리는 늘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를 슬로건으로 내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린다. 디지털을 화두로 내걸고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독립영화와 대안영화의 산실로 위상을 쌓아올렸다. 오늘(26일)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한 곽은미 감독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방송된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이설 배우가 ‘배우상’을 수상했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국까지 흘러들어온 20대 젊은 탈북자가 겪는 ‘감정’을 예리하게 잡아낸다.

곽은미 감독은 “계속해서 떠도는, 유랑하는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벽처럼 선을 긋는 상대방에게 갑자기 느껴지는 거리감, 굉장한 고립감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첫장면은 면접을 보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어로 대답한다. 어느 글로벌 기업의 공채 현장이 아니다. ‘2015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따려는 박한영(이설)은 ‘탈북자’출신이다.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어를 배웠고, 그걸로 한국에서 ‘밥 벌어 먹으려는’ 것이다. 자격증을 땄지만 ‘돈을 많이 벌려는’ 소망은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중국관광객을 가이드하기가 쉬울까. 게다가 넘쳐나던 중국관광객은 ‘사드’의 영향으로 급감한다. 가끔 ‘기관’에서는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고 있는지’ 연락을 해온다. “잘 지내시죠? 별일 없죠?”라고. 같이 넘어온 동생은 ‘돈을 벌겠다고’ 사라져서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힘들게 번 돈은 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은 가족(엄마)에게 부쳐주느라 삶이 갈수록 팍팍해진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탈북자 친구 정미만이 유일한 말벗이었는데 그 친구도 남친과 함께 독일로 이민을 간다고 한다.

보고 있으면 ‘한영’의 삶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영의 탈북 과정은 모두 생략된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북한과 중국 국경을 목숨 걸고 넘었을 것이고,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쳤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을 안고 ‘대한민국’에 왔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봤는가. ‘중국 동포’(조선족)가 아니라 ‘탈북자’의 삶을. 자본주의화 된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세상에서 살아온 그들이 ‘자유와 민주의 화려한 남쪽’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분명 브로커에, 사기꾼에, 협잡꾼에, 부적응자에 속고, 휘둘리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일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조선족’이 아니기에 ‘중국어’는 원래 자신의 언어가 아니다. 그리고 남쪽은 원래 자신의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그런 ‘관광객’을 이끌고 ‘쇼핑’을 권유하는 모습은 굉장히 기이하다. 감독은 이 작품을 준비하며 취재를 많이 한 모양이다. 중국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관광통역안내사’의 역할과 실제 모습에 대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중국관광객들이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을 두고 어떤 말을 할지. “가이드님, 자금성 가 보셨어요?”라고. 한영은 요령이 생긴다. 중국관광객의 구미에 맞춘 설명을 한다. “조선의 왕궁은 중국 자금성을 본떠 만든 곳이랍니다.”라고. “이곳은 교태전입니다. 왕비가 왕에게 교태를 부리던 곳이죠. 매일 밤 왕을 기다렸답니다.”식으로. 그러면 중국 관광객은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우리 쇼핑은 언제 가요?”하는 것이다. 물론, 명동에 가서는 화장품을 하나라도 더 팔게 하기 위해 홍보성 멘트를 많이 준비해야한다.

한영의 삶이 팍팍한 것은 중국인의 비위를 맞추는 가이드의 생업도 힘들지만, 결국 가족의 굴레일 것이다. 사라진 동생도 걱정해야 하고, 매달 돈을 부쳐야하는 ‘북의 엄마’도 그의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히는 올무이다. 유일한 말벗인 정미가 “이제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말이 가슴을 때릴 것이다. 국민이지만 국민은 아닌 것 같고, 가족이지만 가족 같지 않은 관계 속에서 한영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탈북자의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는 기관의 공무원? 브로커만 믿어야하는 북한 가족? "우린 모습만 같지, 한국 사람들한테 외국인들보다 못하다” 한탄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믿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 쉬운 일일까. 영화에서 중국 단체관광객 중 한 사람이 자기 아이를 가이드에게 맡겨놓고 쇼핑가는 장면이 있다. 그 엄마에겐, 그 꼬마에겐 ‘한영’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한영이 결국 이곳을 뜰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디 가더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믿을 수 있는 나라의 믿을 수 있는 땅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 공항을 향하는 한영의 모습. 문득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완전히 다른 선택이지만 말이다.

** 경복궁은 자금성보다 먼저 지어졌고, 교태전은 <주역>에서 따온 '交泰'에서 따온 것으로 교태('嬌態')롭다와는 상관없다. **

▶믿을 수 있는 사람 ▶감독: ▶출연: 이설(한영), 오경화(정미), 박세현(리사오), 전봉석(인혁), 이노아(미선), 박준혁(태구) ▶제작: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개봉:2023년 10월18일/12세이상관람가/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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